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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gional Studies

동북아 지역연구: 중일관계의 복합성, 센카쿠 갈등과 경제상호의존의 딜레마

by IPI 2025. 5. 26.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복잡하고 중요한 양자관계 중 하나다. 2,000년 넘는 교류 역사를 갖고 있지만, 근현대사에서는 침략과 갈등의 상처가 깊게 남아 있다. 1972년 국교정상화 이후 50여 년간 양국은 경제적으로는 밀접한 상호의존 관계를 구축했지만, 정치·안보 차원에서는 구조적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센카쿠/댜오위다오 영토분쟁, 역사 인식 차이, 그리고 중국의 부상에 따른 세력 변화는 양국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국교정상화와 초기 관계 발전

중일 국교정상화는 1972년 9월 29일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의 베이징 방문으로 실현되었다. 냉전 구조 속에서 미중 접근이 이루어지면서 일본도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선 것이었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는 일본의 접근을 환영했고, 양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대만 문제와 전쟁 배상 문제였다. 일본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며 중화민국(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중국은 일본의 전쟁 배상 요구를 포기한다고 선언했는데, 이는 일본의 경제 협력을 통한 중국 현대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실용적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센카쿠/댜오위다오 문제와 역사 인식 문제는 명확히 해결되지 않았다. 덩샤오핑은 "다음 세대가 더 지혜롭게 해결할 것"이라며 영토 문제를 사실상 봉인했고, 역사 문제도 '과거를 거울로 삼아 미래를 지향한다'는 원칙적 합의에 그쳤다. 이러한 애매한 처리는 훗날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경제협력의 급속한 발전

1970년대 후반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 시작과 함께 중일 경제관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일본은 중국 현대화의 핵심 파트너가 되었고, 중국은 일본에게 거대한 시장과 생산기지를 제공했다. 1980년 10억 달러에 불과했던 양국 교역 규모는 2007년 2,360억 달러로 정점을 찍었다.

일본의 대중 투자도 급증했다. 1990년대부터 일본 제조업체들이 대거 중국으로 진출했는데, 저렴한 노동력과 거대한 내수 시장이 매력적이었다. 특히 자동차, 전자, 기계 분야에서 일본 기업들의 중국 투자가 활발했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중국을 아시아 생산 허브로 활용했다.

기술이전과 산업협력도 활발했다. 중국은 일본의 선진 기술 도입에 적극적이었고, 일본 기업들도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기술 이전에 나섰다. 신칸센 기술을 기반으로 한 중국 고속철도 건설, 일본 환경 기술의 중국 도입 등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양국 관계에 변화가 나타났다. 2010년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면서 과거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경쟁 관계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중국 기업들이 일본 기업과 직접 경쟁하는 분야가 늘어나면서 경제 갈등도 증가했다.

센카쿠/댜오위다오 분쟁의 격화

센카쿠/댜오위다오 문제는 중일관계에서 가장 민감한 쟁점이다. 일본은 1895년 청일전쟁 중 무주지였던 센카쿠 제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은 댜오위다오가 역사적으로 중국 영토였으나 일본이 불법 점유했다고 반박한다. 대만도 댜오위타이라는 명칭으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동중국해에서 해저 자원이 발견되면서 영토분쟁이 본격화되었다. 1978년 중국 어선 100여 척이 센카쿠 해역에 출현한 것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충돌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양국 정부는 경제협력을 우선시하며 갈등 확산을 억제해 왔다.

2010년 9월 센카쿠 해역에서 발생한 중국 어선 충돌 사건은 분쟁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일본 해상보안청이 중국 어선을 나포하고 선장을 구속하자 중국이 강력 반발했다. 중국은 일본과의 고위급 교류를 중단하고 희토류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는 등 경제 보복에 나섰다. 이는 경제와 정치가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2012년 일본 정부의 센카쿠 국유화는 분쟁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센카쿠 3개 섬을 국유화하자 중국에서는 대규모 반일 시위가 발생했다. 중국 각지에서 일본 상점과 공장이 파괴되었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되었다. 양국 교역은 급감했고 일본 기업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역사 인식 갈등의 지속

중일 간 역사 인식 갈등은 정치 관계 악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일본의 침략 전쟁, 난징대학살, 731부대 생체실험 등에 대한 양국의 인식 차이가 크다. 중국은 일본이 침략 역사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고, 일본은 중국이 반일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반박한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는 특히 민감한 사안이다. 1985년 나카소네 총리의 공식 참배 이후 중국의 반발이 격화되었다. 2001-2006년 고이즈미 총리의 연례 참배는 중일관계를 최악으로 몰아넣었다. 2013년 아베 총리의 참배 역시 중국의 강력한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일본 교과서 문제도 갈등 요인이다. 1982년 첫 번째 교과서 파동 이후 일본 우익의 역사 왜곡 시도가 계속되자 중국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특히 2001년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 검정 통과는 중국 내 반일 감정을 크게 자극했다.

하지만 역사 문제가 항상 갈등으로만 이어지지는 않았다. 1990년대 중반 무라야마 총리의 사죄 담화, 1998년 오부치-장쩌민 공동선언에서의 역사 인식 공유 등 화해의 시도도 있었다. 2006-2008년 아베-후쿠다 정권 시기에는 역사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지 않기로 하며 관계가 개선되기도 했다.

해양 진출과 안보 딜레마

중국의 해양 진출 확대는 일본에게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 해군의 현대화와 활동 범위 확대, 동중국해에서의 가스전 개발, 센카쿠 주변 순찰 강화 등이 일본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특히 중국이 2013년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것은 일본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일본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2015년 평화안보법제 통과로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해졌고, 2022년에는 반격능력(적기지공격능력) 보유를 결정했다. 또한 쿼드(Quad), AUKUS 등 대중 견제 네트워크 구축에도 적극적이다.

중국은 일본의 군사력 증강과 대중 견제 참여를 경계하고 있다. 특히 일본이 대만 문제에 개입할 가능성을 우려하며 강력히 견제하고 있다. 2021년 미일 정상회담에서 대만해협 평화와 안정이 언급된 것에 대해 중국이 강력 항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안보 딜레마는 양국 관계의 구조적 갈등 요소가 되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견제가 맞물리면서 군비경쟁과 상호 불신이 심화되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 상호의존과 정치적 갈등의 공존

중일관계의 가장 큰 특징은 경제적 상호의존과 정치적 갈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정치 관계가 악화되어도 경제관계는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2012년 센카쿠 갈등으로 관계가 최악에 달했을 때도 양국 기업들은 협력을 지속했다.

중국은 2007년부터 일본의 최대 교역국이 되었고, 일본도 중국에게 중요한 경제 파트너다. 2021년 기준 양국 교역 규모는 3,714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경제관계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경제와 정치의 분리가 어려워지는 조짐이 보인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일본도 반도체, 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대중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 역시 희토류 수출 규제 등을 통해 경제를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양국 기업들도 정치적 리스크를 고려한 전략 조정에 나서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려 하고, 중국 기업들도 일본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 노력하고 있다.

환경·기후변화 협력의 가능성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는 중일 협력의 새로운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양국 모두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어 협력 여지가 크다. 특히 일본의 환경 기술과 중국의 거대한 시장이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실제로 환경 분야에서는 정치적 갈등과 무관하게 협력이 지속되어 왔다. 일본의 대기오염 방지 기술, 폐수 처리 기술, 신재생에너지 기술이 중국으로 이전되었다. 중국의 사막화 방지 사업에 일본이 참여하는 등 구체적 성과도 나타났다.

최근에는 수소경제, 전기차, 태양광 등 신에너지 분야에서도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 중국이 전기차와 배터리에서 앞서가고 일본이 수소 기술에 강점을 보이는 상호보완적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환경 협력도 정치적 제약을 받고 있다.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 경제안보 차원의 고려 등으로 협력 범위가 제한되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라는 글로벌 과제 앞에서 양국 협력의 필요성은 계속 커지고 있다.

지방정부와 민간 교류의 지속

중앙정부 간 관계가 악화되어도 지방정부와 민간 차원의 교류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일본의 47개 도도부현 중 대부분이 중국의 성·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으며, 경제·문화·학술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경제교류에서 지방정부의 역할이 크다.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등 중국 주요 도시에는 일본 기업들이 대거 진출해 있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지방정부 차원의 협력이 활발하다. 중국 지방정부들도 일본의 선진 기술과 관리 노하우 도입에 적극적이다.

학술·문화 교류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양국 대학 간 교류협정이 확대되고 있고, 학생·연구진 교환도 활발하다. 중국 내 일본어 학습자가 100만 명을 넘어서고, 일본 내 중국어 학습자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와 정치적 갈등으로 인적 교류는 큰 타격을 받았다. 2019년 1,000만 명을 넘었던 양국 간 인적 교류가 2020년 이후 급감했다.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인적 교류 회복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제3국에서의 경쟁과 협력

중국과 일본은 아시아·아프리카 등 제3국에서도 경쟁과 협력을 병행하고 있다. 일본의 ODA(정부개발원조)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이 경쟁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는 인프라 건설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제3국에서의 협력 가능성도 모색되고 있다. 2018년 아베 총리가 조건부로 일대일로 협력 의사를 밝힌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고품질 인프라와 중국의 자금력을 결합한 제3국 협력 프로젝트가 태국, 인도 등에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협력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양국의 개발 철학과 방식이 다르고, 상호 불신도 남아 있어 본격적인 협력으로 발전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미중 경쟁 시대의 선택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면서 일본은 복잡한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안보적으로는 미국과의 동맹이 핵심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대중 견제가 체계화되면서 일본의 딜레마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미국과의 동맹을 축으로 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관계는 유지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대중 견제에 동참하고 있다. 2023년 반도체 제조장비 대중 수출 규제 강화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일본이 미국의 대중 견제에 적극 동참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특히 대만 문제에 대한 일본의 개입 가능성을 우려하며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양국 관계의 미래는 이러한 지정학적 경쟁 구도 속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결론

중일관계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복잡하고 역동적인 양자관계다. 경제적 상호의존은 심화되었지만 정치·안보 차원의 구조적 갈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센카쿠/댜오위다오 영토분쟁, 역사 인식 차이, 중국의 부상에 따른 세력 변화 등이 관계 발전을 제약하는 요인들이다.

특히 중국의 급속한 부상과 일본의 상대적 지위 하락은 양국 관계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과거 일본이 우위에 있던 관계에서 중국이 경제 규모 면에서 앞서나가면서 새로운 역학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불안감과 중국의 자신감이 충돌하며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양국의 지리적 근접성과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고려할 때 관계 단절은 현실적이지 않다. 따라서 갈등을 관리하면서 협력을 지속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기후변화, 고령화, 재해 대응 등 공통 과제에서의 협력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정치적 갈등이 경제관계로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미중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중일관계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양국이 상호 핵심 이익을 존중하고 대화를 통해 갈등을 관리한다면 안정적인 관계 유지가 가능할 것이다.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도 중일 간 건설적 관계 구축은 필수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