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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gional Studies

동북아 지역연구: 한중관계 30년, 협력과 갈등의 이중주

by IPI 2025. 5. 26.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이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30여 년이 흘렀다. 냉전 시대 이념적 대립으로 단절되었던 양국 관계는 수교와 함께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동시에 예상치 못한 갈등 요소들도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 중견국 한국 사이의 관계는 이제 단순한 양자 차원을 넘어 동북아 질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가 되었다.

수교 배경과 초기 관계의 특징

한중 수교는 탈냉전이라는 국제정치적 변화와 맞물려 이루어졌다. 소련 해체로 북한이 후원국을 잃어가던 시점에서 한국은 북방정책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했다. 중국 역시 개혁개방 정책의 성공을 위해 서방 선진국들과의 협력이 필요했고, 특히 한국의 자본과 기술력에 관심을 보였다.

수교 초기 양국 관계는 '허니문' 시기로 불릴 만큼 순조로웠다. 한국 기업들은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과 거대한 시장에 매력을 느꼈고, 중국은 한국의 선진 기술과 투자 자본을 적극 유치했다. 1993년 양국 교역 규모는 불과 63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매년 급속히 증가하며 경제관계는 상호보완적 성격을 띠었다.

정치적 차원에서도 양국은 공통분모를 찾아갔다. 일제강점기라는 공통의 역사적 경험, 유교 문화권이라는 문화적 동질성, 그리고 분단국가 또는 통일 과제를 안고 있다는 현실적 고민이 양국 지도자들 사이의 유대감을 강화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장쩌민 국가주석 간의 정상회담에서 '21세기를 향한 협력동반자관계'가 선언된 것은 이러한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경제관계의 급속한 발전

한중 경제관계는 수교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2004년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 되었고, 2021년 기준 양국 교역 규모는 3,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수교 초기 대비 무려 50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한국의 대중 수출 의존도는 25% 수준까지 올라가며, 중국은 한국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가 되었다.

투자 측면에서도 양국 관계는 밀접해졌다. 한국 기업들은 1990년대부터 중국 진출을 본격화했는데, 초기에는 주로 노동집약적 제조업 중심이었다가 점차 첨단기술 분야로 확대되었다. 삼성, LG, 현대 등 한국의 대기업들은 중국을 단순한 생산기지가 아닌 핵심 시장으로 인식하며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하지만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기술 발전은 양국 경제관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수직적 분업 구조에서 점차 수평적 경쟁 관계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한국의 주력 산업에서 중국 기업들의 추격이 거세지면서 한국 기업들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협력과 한계

북핵 문제는 한중관계에서 협력과 갈등이 동시에 나타나는 대표적 사안이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안정이라는 원칙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북한 체제 붕괴로 인한 난민 유입과 미군의 중국 국경 접근을 우려해 왔다. 반면 한국은 북핵 문제의 신속한 해결을 위해 중국의 적극적 역할을 기대해 왔다.

6자회담 과정에서 중국은 의장국 역할을 맡으며 북핵 문제 해결에 나름의 기여를 했다. 2005년 9·19 공동성명 도출과 2007년 2·13 합의 등에서 중국의 중재 역할이 중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때마다 한국이 원하는 수준의 강력한 제재에는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특히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중국의 애매한 태도는 한국 내 대중 여론을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 중국이 북한을 감싸고 있다고 인식했고, 중국은 한국이 미국의 대중 견제 정책에 동조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상호 불신은 이후 한중관계의 구조적 갈등 요소로 자리 잡았다.

사드 배치와 관계 악화의 전환점

2016년 한국의 사드(THAAD) 배치 결정은 한중관계에 결정적 타격을 가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수용하자, 중국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중국은 사드의 X밴드 레이더가 자국의 전략 자산을 감시할 수 있다며 한국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에 나섰다.

중국의 경제보복은 한국 경제 전반에 큰 타격을 입혔다. 중국 내 롯데마트 영업 정지, 한국 관광객 단체 여행 금지, 한류 콘텐츠 수입 중단 등으로 한국 기업들이 직접적 피해를 입었다. 2017년 한국의 대중 수출은 전년 대비 감소했고, 관광업계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사드 갈등은 양국 관계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한국은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했지만, 중국은 자국의 핵심 이익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경제관계가 정치·안보 갈등에 직접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문화교류와 국민감정의 변화

한중 수교 이후 양국 간 인적 교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92년 연간 방문객이 13만 명에 불과했던 것이 2019년에는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중국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해외 목적지가 되었고, 한국 역시 중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로 부상했다.

교육 분야에서도 교류가 활발해졌다. 중국 내 한국어 학습자는 100만 명을 넘어섰고, 한국 내 중국인 유학생도 6만 명에 달한다. 공자학원과 세종학당을 통한 언어 교육, 자매도시 결연을 통한 지방 교류 등이 양국 관계의 저변을 넓혔다.

한류의 중국 진출도 양국 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한류는 2000년대 들어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K-드라마와 K-팝은 중국 젊은 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는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 형성에 기여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양국 국민감정에는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사드 갈등 이후 상호 호감도가 하락했고, 온라인 공간에서는 역사 인식과 문화 원류를 둘러싼 논쟁이 빈발하고 있다. 특히 김치, 한복 등 전통문화의 기원을 둘러싼 갈등은 양국 네티즌들 사이의 감정적 대립으로 번지기도 했다.

역사 인식과 영토 문제의 잠재적 갈등

한중 간에는 직접적인 영토 분쟁은 없지만, 역사 인식을 둘러싼 잠재적 갈등 요소가 존재한다.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은 고구려, 발해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로 한국 내에서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2004년부터 본격화된 이 프로젝트는 한국의 역사 정체성과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순수한 학술 연구라고 주장하지만, 한국은 이를 한반도 통일 이후를 대비한 영향력 확장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북한 지역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권리를 주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양국 정부는 2006년 역사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학계와 언론에서는 여전히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어도를 둘러싼 문제도 잠재적 갈등 요소다. 이어도는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 있지만 중국도 자국 EEZ에 포함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 심각한 충돌로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해양 자원 개발과 어업권 문제가 복합되면서 향후 갈등 소지를 안고 있다.

미중 경쟁 시대의 전략적 딜레마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면서 한국은 복잡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지만, 안보적으로는 미국과의 동맹이 핵심이다. 이러한 딜레마는 사드 사태를 통해 현실로 드러났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대중 견제는 더욱 체계화되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공급망 재편이 진행되면서 한국 기업들은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도, 미국의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중국 역시 한국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고 있다. 경제 파트너로서 한국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이 적극 참여하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특히 쿼드(Quad) 참여나 대만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 표명을 민감하게 지켜보고 있다.

신영역에서의 협력과 경쟁

전통적인 정치·경제 협력 외에도 양국은 새로운 영역에서 협력과 경쟁을 동시에 전개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 디지털 전환, 우주개발 등 글로벌 이슈에서는 협력 여지가 크지만,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미래 산업에서 양국의 경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를 통해 첨단산업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한국 역시 K-뉴딜을 통해 디지털·그린 경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술 협력과 경쟁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 분야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과거 일방적인 한류 열풍에서 벗어나 중국의 문화 콘텐츠도 한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양국의 문화산업이 성장하면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쌍방향 교류로 발전하고 있다.

지방정부와 민간 차원의 지속적 협력

중앙정부 차원에서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지방정부와 민간 부문의 교류가 관계 안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한국의 광역자치단체 대부분이 중국의 성·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으며, 이를 통한 경제·문화 교류가 활발하다.

기업 간 협력도 정치적 갈등과는 별개로 지속되고 있다. 사드 갈등 당시에도 양국 기업들은 새로운 협력 방안을 모색했고, 실제로 많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 진출을 확대하거나 유지했다. 이는 경제 관계의 상호의존성이 정치적 갈등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하지만, 완충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민사회 차원에서도 양국 간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다. 학술교류, 청소년 교환, NGO 협력 등이 정부 관계와 무관하게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다층적 교류는 양국 관계의 저변을 넓히고 갈등 상황에서도 소통 채널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결론

한중관계 30년사는 협력과 갈등이 교차하는 복합적 양상을 보여준다. 경제적 상호의존은 심화되었지만, 정치·안보 차원에서는 구조적 갈등 요소가 상존하고 있다. 특히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면서 한국은 더욱 복잡한 외교적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앞으로 한중관계는 과거와 같은 '허니문' 시기로 돌아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양국의 경제적 상호의존성과 지리적 근접성을 고려할 때 관계 단절 역시 현실적이지 않다. 따라서 갈등을 관리하면서 협력을 지속하는 '성숙한 관계'로의 발전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상호 핵심 이익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다. 한국은 중국의 부상을 인정하면서도 자국의 안보와 가치를 수호해야 하고, 중국은 한국의 동맹 관계를 이해하면서도 지나친 압박은 자제해야 한다. 양국이 동북아 평화와 번영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협력할 때 진정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가능할 것이다.